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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에 대해

독일맥주순수령의 두가지 설

독일맥주 순수령

1516년, 맥주 품질을 안정시키려고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4세가 '맥주 원료는 보리 맥아와 홉과 물만으로 만들라'는 맥주순수령을 정했다. 1556년에 효모를 추가해 맥주 품질을 향상하는 데 이바지했다. 맥주순수령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품 품질 보증 법률이다. 오늘날, 독일 국내에서는 원칙적으로 순수령을 고수한다.

가펠쾰쉬


식량(빵) 확보설

독일 맥주가 맛있는 이유는 맥주가 신선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1516년 바이에른 지역의 빌헬름 4세는 맥주의 재료를 4가지로 제한하는 법령을 발포했다. 사실, 이 법은 원래 독일의 주식인 빵의 주재료인 밀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법령이다.
500년 전에는 밀로 맥주를 빚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었는데, 이 때문에 실제로 빵을 만드는 밀이 부족했던 것이다. 반면 보리로는 빵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빌헬름 4세는 맥주를 만들 때 보리 외에 다른 곡물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법을 제정한 것이다. 물론 과일이나 향신료뿐 아니라 다른 첨가물도 맥주 제조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법을 만든 백작 자신은 이 법률에서 면제되었고 바이에른 지역에서 독점적으로 밀맥주를 양조하는 특혜를 누렸다. 오늘날 유명한 호프브로이하우스는 바로 그가 세운 양조장이다. 이 법은 바이에른 지역뿐 아니라 독일 전 지역에 적용되었고, 19세기 초까지 지켰다. 그 이후에 밀로 맥주를 만드는 것이 합법화된다. 현재는 맥주 순수령으로는 해외시장에서 다른 맥주회사와 경쟁하기 힘들기 때문에 수출을 위해 법이 완화됐지만, 맥주 순수령이 독일 맥주의 순수함을 지키고 맥주의 질을 높이는데 많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맥주 순수령은 독일 맥주 문화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모조술 양조 방지설

맥주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독일맥주순수령'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물, 보리, 홉, 이스트 이 4가지 원료만을 사용하여 맥주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법령. 그러나 사실은 물, 보리, 홉, 세 가지 원료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1516년 바이에른의 공작 빌헬름 4세가 제정한 법령의 실제 내용이다. 16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법령에 효모가 추가되었고, 그 이전에는 자연발효를 해왔기 때문에 효모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그러면 왜 독일에서 이런 법령을 내렸을까.
순수령은 바이에른 맥주 품질을 지키기 위해 공표되었다고 전해지지만, 동기가 그렇게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독일어에 schen'이라는 동사가 있는데 '술, 우유 등에 불순물을 섞어 위조하다'라는 뜻이다. 맥주에 물을 섞어 유사품을 만든다는 뜻의 단어가 독일어에 존재하는 것이며, 이는 즉 'Panscher(모조술을 만드는 상인)'이 활개를 쳤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중세시대 형벌을 살펴보면 맥주에 물을 타서 판매한 자는 '물 긷는 형'이라고 하여, 수로의 물을 통으로 길어 올려 산 위에 있는 저수장으로 운반하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는 벌을 받았다. 또, 건강을 해치는 질 나쁜 맥주를 만들어 판매한 자는 자신이 만들어 판매한 것과 똑같은 질 나쁜 맥주를 매일 마셔야 하는 '보복 형벌'이 있었다. 위와 같은 사실을 봤을 때 불량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이 흔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중세시대 뮌헨에서 일반적으로 마시던 술은 와인이었다고 한다. 맥주는 오로지 상류 계급이나 성직자만 마실 수 있었다. 이유는 당시의 바이에른주 주도인 뮌헨 등지에서는 뛰어난 품질의 맥주가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 없는 업자가 만든 가짜 맥주가 판을 쳤다. 그래서 재력 있는 제후가 자가소비용으로 먼 곳에서 맥주를 사들였다. 주로 품질이 좋았던 북독일 맥주를 사 왔었는데 당연히 수입 맥주는 고가일 수밖에 없었다. 제후는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 바이에른의 맥주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결정한다. 명령이나 법률로 위협해서 부패한 맥주 제조업자들을 단속하려는 의도가 순수령 공포의 시작이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남부 독일의 맥주 품질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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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맥주순수령

그 후 순수령은 바이에른 이외의 지역에도 이름을 알리며 독일 전역으로 퍼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1919년, 독일 역사 최초의 공화국인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고, 그때 바이에른은 바이마르 공화국에 참가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때까지도 도이칠란트는 현재의 완전한 통일국가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바이에른은 바이마르 공화국에 참가하는 대신 ‘바이마르 공화국 내의 모든 주에서 맥주순수령을 채택하라’는 흥미로운 조건을 내걸었고, 덕분에 순수령은 독일의 국법이 됐다.
1933년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하지만 순수령은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의외의 시기에 위기가 왔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공동체의 나라들이 압력을 넣은 것이다. 특히 프랑스가 ‘독일에서만 맥주의 원료를 한정하는 것은 국가 간의 공정한 무역을 저해하는 비관세장벽이나 마찬가지다’라며 유럽공동체의 분쟁재정위원회에 제소했다. 결국 1987년에 순수령은 비합법 판결을 받게 됐다. 그러나 독일인은 국산 맥주만큼은 앞으로도 순수령을 따라 맥주에 호프·물·보리·효모의 순수 자연원료만을 사용할 것을 고집했다. 한마디로 맥주 순수령은 독일 맥주 문화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결국 독일 맥주가 맛있는 까닭은 바로 맥주 순수령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